인천 아시안게임 육상은 아프리카 출신 선수들의 잔치였다. 어느 때보다 강했던 아프리카발(發) 강풍에 아시아 육상 판도가 크게 바뀌었다.
3일 열린 남자 마라톤에서는 바레인의 마흐붑 알리 하산(33)이 일본의 두 선수와 막판까지 각축을 벌이다 2시간12분38초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한국의 심종섭(23·KEPCO)은 2시간23분11초로 10위에 머물렀다.
5000m와 1만m가 주종목이었던 마흐붑은 마라톤 풀코스(42.195㎞) 첫 도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마흐붑은 2005년 케냐에서 귀화한 선수다. 전날 열린 여자 마라톤에서도 케냐 출신으로 바레인에 귀화한 에우니세 젭키루이 키르와(30)가 정상에 올랐다.
인천 아시안게임 육상 47개 종목 가운데 아프리카 출신 선수가 금메달을 딴 종목은 15개(전체 31.9%)나 됐다. 금메달리스트만 11명이나 돼 2010년 광저우 대회(선수 7명·금메달 8개)보다 크게 늘었다. 나이지리아 출신의 카타르의 나이지리아 출신 페미 오구노데(23)는 100m에서 9초93의 아시아 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따냈고, 200m도 석권했다. 에티오피아 출신 무함마드 알리아 사에드(20)는 여자 1만m에서 금메달을 따낸 뒤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국기를 흔들며 환호했다.
아프리카 출신 선수들의 선전에 아시아 육상 지도가 바뀌었다. 바레인은 이번 대회 육상에서만 금메달 9개(은5·동1)를 따 중국(금15·은14·동11)에 이어 두번째로 좋은 성적을 냈다. 카타르도 금메달 6개로 뒤를 이었다. 반면 금메달 10개를 목표로 삼았던 일본은 금메달은 3개에 그치고 은 12개, 동 7개를 따냈다. 한국도 ‘노 골드’에 은 4, 동 6개로 대회를 마쳤다.
아프리카 선수들이 다른 나라로 귀화해 뛰는 것은 흔한 광경이 됐다. 탄력과 유연성이 뛰어난 아프리카 출신 선수들은 ‘오일 머니’를 앞세운 중동 국가로 국적을 바꾸는 게 다반사가 됐다. 선수들도 경쟁이 치열한 아프리카를 벗어나 부와 명예를 동시에 챙길 수 있는 중동행을 바라고 있다. 여자 1500m·5000m를 석권한 에티오피아 출신 마리암 유수프 자말(30·바레인)은 “바레인엔 마음껏 뛸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있다. 달리고 싶은 꿈 때문에 국적만 바꿨을 뿐이다”고 말했다.
AFP는 최근 “아프리카 출신 중동 선수들의 선전은 순수한 아시아 선수들로 구성된 다른 나라의 반발을 불렀다”고 전했다. 남자 100m에서 오구노데에 이어 은메달을 딴 수빙티안(25·중국)은 “키도 크고 보폭도 넓은 아프리카 출신 선수들과 이런 무대에서 경쟁하는 건 불공정하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지적에 쿠웨이트 출신 후세인 알 무살람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사무총장은 “새롭게 아시아 국적을 취득한 선수들은 더 높은 기준과 새로운 성취감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반박했다.
경보·장대높이뛰기·멀리뛰기 등 7개 종목에서 메달을 따낸 한국도 아프리카 강풍에 휩쓸려 36년 만에 노골드에 머물렀다. 장재근(52) 화성시청 감독은 “중동에서 뛰는 아프리카 출신 선수들은 다양한 국제 대회 출전하는 등 경험도 풍부하다. 우리도 국제 경쟁력을 키울 수 있도록 선수들이 해외 대회에 많이 출전하도록 독려하고 전략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천=김지한 기자 hanskim@joongang.co.kr